신경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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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 신축병원이 개원됨에 따라 응급실이 다시 운영되었으며 2월 신경외과 병동은 구병원 서2병동에서 신축병원 55병동으로 이전되었고 6월 다시 84병동의 일부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1978년 신축병원에 설치된 CT scanner가 이 해에 본격 가동되었다. 김정식, 오세문이 수련과정을 이수하였으며 권병덕, 김동규, 어환이 레지던트로 입국하였다.
       
    1978 병원은 서울대학교병원으로 개명되면서 법인체로 발족하였다. 8월에는 3일간의 인턴 파업이 있었으며 신축병원 건설에 따라 응급실이 폐쇄되었고 신경외과는 동3병동으로부터 서2병동으로 이전되었다.석종식, 차희중이 수련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이현구, 고영초가 레지던트로 입국하였다. 한대희가 조교수로 승진되었고 조병규가 조교수로 발령되었다.심보성 교수는 3개월간 Minnesota 대학에 연수차 도미하였다. Hemifacial spasm 환자에서 microvascular decompression (MVD)을 처음 시행하였다.
       
    1977 신경외과 영역에서의 경이적 발전을 대변하는 CT scan이 경희의료원에 설치되면서 새로운 장이 열렸다. 한편 서울대학교병원 설치법이 공포되어 운영면에 있어 그 독립성이 강화되었다.
       
    1976 김국기, 김종현, 최운성이 수련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정희원, 황성남이 레지던트로 입국하였다. 한대희가 전임강사로 발령되었으며 최길수 조교수가 New York의 Mt. Sinai 병원으로 3개월간 microsurgery 연수차 도미하였다.
       
    1975 서울대학교 본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되었으며 병원에서는 인턴 숙소가 폐쇄되면서 비번 인턴은 통원 근무토록 변경되었고 신경외과 의국과 숙직실이 신축병원 건물로 이전되었다. 손효정과 조병규가 수련과정을 이수하였고 오세문과 김정식이 레지던트로 입국하였으며 채진 강사가 사직하고 도미하였다. 동년 10월 11월에는 최길수 조교수가 신경외과 과장과 신경외과학교실 주임교수로 각각 보직 발령되었다.
       
    1974 병원은 모자병원제도를 실시하기로 하여 서울시와 시립병원에 레지던트 파견을 협약하였으며 대학에서는 교수공개채용을 실시하였다. 한편 신경외과 환자수가 증가됨에 따라 수석의를 종전의 1인에서 2인으로 바꾸었다. 조맹기가 수련과정을 이수하였고 석종식과 차희중이 레지던트로 입국하였다.v동년 8월 15일에는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어 심보성 교수, 최길수 조교수, 손효정, 차희중 등이 수술을 시행하고 최선을 다하였으나 서거하였다.
       
    1973 병원에서는 모자병원 제도를 도입키로 하였고 신축병원 골조공사가 완료되었다. 동년 1월 25일에는 외래진료소에 화재가 발생하여 외래건물 일부와 상당수의 병록이 소실되었다. 김윤이 수련과정을 이수하였고 고학종, 김현집, 신동휘가 레지던트로 입국하였으며 이현재가 4년차 과정중 일신상 이유로 사직하였다. 이준익 동문이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채진이 전임강사로 발령되었으며 최길수 강사가 조교수로 승진되었고 주정화 조교수가 부교수로 승진되면서 사표가 수리되었으며 심보성 교수는 병록실장을 후임 석세일 부교수에게 인계하였다. Conray ventriculography (VEG)와 transfemoral cerebral angiography (TFCA)등이 시행되었으며 최초의 microsurgery가 1월 12일 최길수 조교수에 의하여 intramedullary cervical cord tumor 환자에게 시행되었다. 서울시내 신경외과 의사들의 학술모임인 수요집담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으며 동년 12월 28일에는 동문회가 결성되어 결성식 및 동문망년회를 구교수회관에서 가졌다.
    동문회가 결성됨에 따라 제1회 동문회 야유회를 청평 유원지에서 (4월 28일), 제1회 Sim's Cup 테니스대회를 삼송리 혜인 테니스 코트에서 (9월 15일) 각각 거행하였다.
       
    1972 박청수, 한대희가 수련과정을 이수하였고 김종현, 박경수, 최운성이 레지던트로 입국하였다. 이해부터 수련중 6개월간 무의촌 근무가 의무화되어 그 첫 해당자로 조맹기가 파견되었다. 최길수 강사가 2년간의 Minnesota 대학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여 microsurgery의 최신지견을 소개하였으며 동년 11월에는 주정화 조교수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외과학교실 주임교수로 부임하였다. Vertebral angiography (VAG)가 시작되었으며 Thoracic HIVD가 처음 수술되었고 종전에 시행하던 mortality conference를 neurosurgical conference로 바꾸어 매주 토요일 진행하였다. 한편 microsurgery를 이용한 동물실험이 시작되었다.
       
    1971 병원내 두 차례의 수련의 파동이 있었다. 1차로 6월 28일부터 7월 9일까지 인턴 파동이 있었으며 2차는 인턴 파업에 레지던트가 동조하여 전국적으로 파급되면서 국가 차원의 문제로 발전되었다. 초기에 서로 강경한 입장을 취하였으나 사태는 원만히 해결되어 희생자 없이 다소의 처우 개선이 이루어졌다. 황도윤이 수련과정을 이수하였다. 교실 연보 제1호가 발행되었고 또한 일일보고서 기록이 시작되어 향후 기록보존과 정리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70 2월에는 병원에서 과장 보직발령이 처음 시행되어 심보성 교수가 신경외과 과장으로 보직발령되었다. 채진, 표학배, 최병권이 수련과정을 이수하였다. 최병권은 마취과로부터 수련중 전과하였으나 서류가 처리되지 않아 서류상으로 마취과 수련을 이수한 것으로 되었다. 김명호, 조맹기, 이현재가 레지던트로 입국하였다. Posterior communicating artery aneurysm의 direct clipping이 시행되었다. 최길수 강사가 Minnesota 대학으로 연수차 도미하였으며 심보성 교수가 초대 병록실장으로 임명되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