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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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 박효일과 최덕영이 수련과정을 이수하였으며 김윤이 레지던트로 입국하였고 이동명이 수련중 사직하고 도미하였으며 윤금중 강사도 사직하고 도미하였다. 최길수가 전임강사로 발령받았고 심보성 부교수가 교수로 승진되었으며 대한신경외과학회 회장직을 맡았다. 심보성 교수가 국제신경외과학회에 참석하고 surgical loupe, microsurgical instrument, bipolar coagulator등을 국내에 소개하였으며 head lamp의 사용이 일반화 되었다. Radioisotope를 이용한 brain scanning이 시작되었으며 pineal tumor의 direct approach가 처음 시행되었다.
       
    1968 3월 1일에는 주임교수 총장 발령제 (임기 2년)가 시행되어 신경외과 주임교수에 심보성 부교수가 발령되었다. 이준익이 수련을 이수하였다. 김인원은 수련 중 사직하고 도미하였다. 종전에 레지던트 1년차를 일반외과에서 시작하던 제도를 바꾸어 1년차부터 신경외과에서 근무토록 하였다. 이에 따라 박청수, 한대희가 레지던트로 입국하면서 바로 신경외과에서 근무를 시작하였고 김윤용이 제대후 1년차로, 최병권이 마취과 2년 수료하고 3년차로 각각 입국하였다. Octavio Polanco가 외래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Neurosonography와 ventriculoatrial (V-A) shunt가 처음 시행되었고 물리치료실이 개설되었다.
       
    1967 교수회의 결의에 의하여 외과학교실이 일반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의 4개 교실로 정식으로 독립되었으며 신경외과 레지던트 수련과정 내용도 바뀌어 종전에 외과 1년 수료 후 신경외과 과정을 밟으며 그 중 6개월은 타과로 파견토록 되었던 것을 타과 6개월, 신경외과 3년 6개월로 변경하였다. 조영희가 수련과정을 이수하였으며 황도윤, 이동명이 1년차 레지던트로, 표학배가 외과 1년 수료후 2년차 레지던트로 각각 입국하였고 윤금중이 공군제대후 강사로 복귀하였다. 진료면에서는 dexamethasone과 mannitol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환자 관리에 큰 진보를 보였다. 동년 9월 1일에는 교실창설 10주년 기념행사를 구교수회관에서 가졌으며 심보성 부교수, 주정화 조교수, 윤금중 강사를 비롯하여 이주걸, 김정근, 이헌재, 임광세 선생 등 많은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동년 12월 7일에는 신축병원 시공식이 있었다.
       
    1966 의대도서관이 정식으로 발족되었고 병원은 특별회계제도를 채택하여 독립채산 원칙으로 운영되기 시작하였으며 수술용 현미경이 도입되는 등 여러모로 발전을 보였다. 외과학교실은 일반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학교실로 분과하기로 결정하였다. 또 병원의 환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병실확장 및 재배치가 이루어져 교실 창설 이후 정형외과 및 흉부외과와 함께 사용하던 동1병동으로부터 신경외과 단독 병동인 동3병동과 동5병동 (일부분을 사용)으로 병실을 이사하였다. 동년 최길수가 수련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채진이 1년차로 레지던트로, 최덕영이 마취과 1년 수료후 2년차 레지던트로 각각 입국하였고 주정화 강사가 조교수로 승진하였으며 S. Wigser가 Marvin R. Cressman의 후임으로 외래조교수에 임명되었다.
       
    1965 대한신경외과학회가 국제신경외과학회와 아시아대양주신경외과학회의 회원국이 되었으며 병원에는 두부용 X 선 촬영기가 도입되는 등의 발전이 있었다. 주동선이 수련과정중 New York 대학 재활센터로 재활의학 연수차 도미하였다. 박효일이 1년차 레지던트로, 김인원이 외과 1년 수료후 2년차 레지던트로 각각 입국하였고 오수영이 3년차 과정중 스위스 유학을 떠났다. 심보성 조교수가 부교수로 승진되었으며 121 미군 후송병원의 Marvin R. Cressman이 외래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1964 윤금중이 수련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이준익이 레지던트로 입국하였다. 이 해 시작된 외래 교수 제도에 의거하여 김정근 외래 조교수와 서영환 외래강사가 발령되었다. 주정화 강사에 의하여 parkinsonism 환자에서 stereotaxic thalamotomy가 시행되었다.
       
    1963 병원에서는 모자병원 제도를 도입키로 하였고 신축병원 골조공사가 완료되었다. 동년 1월 25일에는 외래진료소에 화재가 발생하여 외래건물 일부와 상당수의 병록이 소실되었다. 김윤이 수련과정을 이수하였고 고학종, 김현집, 신동휘가 레지던트로 입국하였으며 이현재가 4년차 과정중 일신상 이유로 사직하였다. 이준익 동문이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채진이 전임강사로 발령되었으며 최길수 강사가 조교수로 승진되었고 주정화 조교수가 부교수로 승진되면서 사표가 수리되었으며 심보성 교수는 병록실장을 후임 석세일 부교수에게 인계하였다. Conray ventriculography (VEG)와 transfemoral cerebral angiography (TFCA)등이 시행되었으며 최초의 microsurgery가 1월 12일 최길수 조교수에 의하여 intramedullary cervical cord tumor 환자에게 시행되었다. 서울시내 신경외과 의사들의 학술모임인 수요집담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으며 동년 12월 28일에는 동문회가 결성되어 결성식 및 동문망년회를 구교수회관에서 가졌다.
    동문회가 결성됨에 따라 제1회 동문회 야유회를 청평 유원지에서 (4월 28일), 제1회 Sim's Cup 테니스대회를 삼송리 혜인 테니스 코트에서 (9월 15일) 각각 거행하였다.
       
    1962 서영환이 수련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최길수가 레지던트로 입국하였다. 동년 7월에는 주정화 조교가 전임강사로 발령받아 2인의 교직원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심보성 조교수가 대한신경외과학회의 부회장을 겸임하였다. 안와 수술과 Torkildsen shunt가 처음 시행되었다.
       
    1961 5.16 혁명이 있던 이 해에는 대한신경외과학회가 창립되었으며 심보성 강사가 총무로 임명되었다. 송두호, 유영구, 주정화가 수련을 이수하였다. 이 해부터는 레지던트 모집시 의과계 총 8명 중 신경외과에 1명 배당하기로 결정되었고 이에 따라 신경외과에는 당시 4년차였던 서영환이 근무하게 되었으며 신경외과 레지던트 예정자로서 주동선이 외과 레지던트로, 최길수가 인턴으로, 각각 근무를 시작하였다. 심보성 강사는 조교수로 승진하였고 동년 8월 주정화 조교가 2년간의 Minnesota 대학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였다. Pain relief를 위한 open cordotomy와 commissural myelotomy가 처음 시행되었다.
       
    1960 4.19 의거가 나던 이 해에는 3월 제1회 레지던트 18명이 수료하였으나 신경외과에는 해당자가 없었고 윤금중이 외과 레지던트로 입국하였다. top∧